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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senmann






언어중심적 건축경향을 보이는 대표적 건축가 .


아래는 김성홍씨의 설명. 로버트 벤추리가 ‘라스베가스의 교훈’을 출간하기 1년전인 1971년 아이 만은 당시 그가 주간으로 있었던 건축지에 “오브제에서 關係로(From objects to relationships)”를 싣는다. 제목이 암시하듯 아이 만은 오브제 중심의 벤츄리와 젱크스의 이론을 비판하고 구체적 이미지를 배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전환하고자 했다. ‘오브제’가 시지각의 대상이라면 ‘관계’는 감각과 경험의 대상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관념의 영역이다. 아이 만은 건축 뿐 아니라 20세기의 회화도 오브제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레거와 말레비치와 같은 근대주의 화가들은 고전회화의 한계를 넘고자 기하학적 추상성을 추구했지만 여전히 오브제에 집착하는 공통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회화와 달리 건축은 필연적으로 공간을 가지므로 오브제 중심의 근대건축에 대한 아이 만의 비판은 더욱 강하다. 근대주의의 정신을 신봉하는 건축가들은 고전건축의 첨탑, 아치, 기둥, 창에 붙어 있는 모든 것들을 장식으로 간주하여 제거하려했고 이전에는 없었던 순수한 형태를 추구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 만은 건축을 시지각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은 근대건축에서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예로 르꼬르뷔제는 고건축의 요소를 부정하는 대신 등장한 기계, 배, 비행기에서 새로운 건축형태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했다. 오브제에서 탈피했다기보다는 오브제를 변형하거나 새로운 맥락에 놓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빌라 가르쉬의 기둥 간격의 리듬도 순수한 기하학적 질서라기보다는 르네상스의 이상적 세계관을 새롭게 구현한 것이라고 보았다(Eisenman, 1971).


아이 만은 소쉬르의 언어학의 한계를 보완하는 촘스키의 이론을 변용했다. 소쉬르의 구조주의적 언어학을 따르면 사물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못하고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해 가치를 가진다. 모든 사물은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다고 믿었던 고전 언어학의 전제를 뒤집고 소쉬르는 소리는 다른 소리와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고 보았다. 언어를 명사들의 집합이 아닌 관계성으로 보았던 것이다. 즉 기피와 기의의 관계가 하나의 기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기피와 기의에는 말하는 사람 즉 화자의 존재가 없다는 비판이 따른다. 건축을 기호로 볼 때 주체의 문제는 더욱 부각된다.


아이 만이 촘스키의 이론을 받아들인 것은 바로 말하는 사람의 창조적 능력을 이론화한 부분 때문이다. 촘스키가 언어를 실용론(pragmatics), 의미론(semantics), 구문론(syntactics)으로 나눈 것처럼 건축 역시 유사한 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아이 만의 생각이다. 실용론은 형태와 기능 혹은 기술과의 관계, 의미론은 형태와 사회적, 관습적 의미와의 관계로 각각 해석할 수 있다. 건축이론가 비트루비우스가 건축의 가치를 用, 美, 强으로 나눈 점이 언어학의 분류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벤츄리와 젱크스는 근대건축이 의미론적 측면을 철저히 부정하였다고 본 반면 아이 만은 근대건축이 여전히 실용론과 의미론에 치중하여 구문론적 측면은 간과했다고 보았다. 아이 만은 구조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여 건축에서의 구문(syntax)을 정의하려고 했다. 구문은 중심과 주변, 선, 면, 볼륨 등 사회문화적 의미를 전혀 내포하지 않는 순수한 기하학적 요소들의 관계를 말한다. 이점에서 언어에서의 ‘구문’을 건축에 적용할 때 ‘구조’로 의역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아이 만은 촘스키의 이론에 따라 건축의 구조를 ‘표피 구조’와 ‘심층구조’로 나누었다. 촘스키는 표피구조가 곧바로 화자의 음성으로 드러나는 구조인 반면 심층구조는 언어구조에 대한 지식이나 직관을 가지고 무한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잠재적 능력이라 보았다. 시대와 지역이 달라도 언어는 구조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보편적 언어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한정된 단어를 갖고 다양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언어의 창조적 능력 때문이다. 소쉬르 언어학에서 설자리가 없었던 ‘주체’를 촘스키는 부각시켰다. 아이 만이 관심을 두 것이 바로 언어의 심층구조와 같은 것이 건축에도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이 만이 건축의 심층구조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고전건축에서 근대건축까지 계속된 형태와 그 것이 지칭하는 의미의 체계, 즉 표상을 본질적으로 부정하고 의미를 완전히 소거한 순수한 건축형태의 문제로 접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벤츄리는 ‘절대논리’와 ‘상황논리’의 공존과 대립을 이론의 바탕으로 삼았다. 전자가 추상적인 원리와 질서라면 후자는 현실세계의 구체적 상황이다. 전자는 ‘개념(concept)’의 영역이고 후자는 ‘지각(percept)’의 영역이다. 벤츄리는 개념의 영역과 지각의 영역을 접목하려고 했다. 반면 아이 만은 대상에 대한 지나친 지각을 배척했다. 그는 지각보다 개념을 내 세운다. 지각은 물질의 표면, 재질, 색상, 그리고 구체적 형과 같은 감각적(sensual) 성질을 경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개념은 앞과 뒤, 기울어짐, 후퇴, 연장, 압축 혹은 전단(剪斷) 등과 같이 감각으로 금방 체험할 수 없는 구조이므로 관념의 대상에 보다 가깝다.


개념적 구조는 결코 직설적으로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암시할 뿐이다. 때문에 심층구조는 다층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건축의 다층적 다면적 의미체계를 추구했던 점에서 아이 만의 이론은 벤츄리의 복합성과 맥이 닿는다. 그러나 그는 벤츄리가 추구하였던 건축의 요소나 오브제를 디자인의 대상에서 배제했다. 그 대신 선, 면, 볼륨처럼 전통적 의미가 배제된 기하학적 도형과 이것들 사이의 관계에서 새로운 건축의 해법을 찾으려 했다. 아이 만의 이론은 당시 인본주의를 가장한 건축대중화 흐름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반향을 일으켰다. 근대주의의 영웅주의적, 규범적 옷을 벗어 던지면서도 탈근대주의의 천착함을 냉소하는 엘리티시즘이 이론적 경향을 띄어가던 당시 건축학계에서 설득력을 얻었던 것이다.


아이 만은 이태리의 근대건축가 귀세뻬 떼라니(Giuseppe Terragni)의 건축에서는 르꼬르뷔제와는 다른 구문론적 설계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언어학의 이론을 빌어 해석하려고 했다. 자연히 역사적이라기보다는 분석적 접근방법을 취하게 된다. 그가 떼라니의 건축을 해석한 방식은 두 가지이다. 첫째, 공간을 입방체를 썰어 분할하는 과정이다. 둘째, 공간을 마치 카드를 겹치는 것처럼 면을 중첩하여 볼륨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전자는 중심을 가진 덩어리를 잘라내는(subtractive) 방식이라면 후자는 주변으로부터 점차 중심을 향하여 더하는(additive) 방식이다. 벤츄리와 젱크스가 건축을 문, 창, 기둥, 아치 등 기능과 관련된 요소로 분할하였다면 아이 만은 건축을 기능이 배제된 도형자체의 구성과정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떼라니 건축을 ‘해체’했다면 자신의 설계에서는 이를 ‘재구성’의 과정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허와 실의 관계, 중심과 선의 관계, 그리고 선, 면, 입체간의 관계 등 그가 심층구조라고 정의한 것들에 의해 형태와 공간이 생성된다. 벤츄리와 젱크스가 복원하려고 했던 대중문화코드나 기호의 건축의 천박함을 극복하기 위해 언어의 심층구조를 건축에 적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심층구조가 구체적 형상으로 전이되는 과정은 기술, 예산, 대지 등 외적 상황과 독립적인 내부의 법칙에 의해서이다. 건축가는 이때 중립적 중재자가 된다. 형태와 연관된 관습적 의미를 철저히 분리함으로서 건축의 자율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 만이 시도한 것처럼 의미가 없거나 중립적인 형태나 공간을 만들 수는 없다. 건축설계는 개인이나 집단의 의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이 만이 건축에서 표상의 역할을 배제하고 수수한 논리적 체계로만 해석하려고 했지만 그의 시도는 의미론의 완전한 부정이라기보다는 탈근대주의 건축가들이 옹호한 ‘명백한 의미’의 대중코드나 기호 대신 ‘암시적 의미’를 가진 새로운 형태를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의 옷을 입힌 언어학적 이론에는 건축의 본질적인 구조, 물성, 프로그램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는 건축을 기표와 기의의 관계로 단순화하는 것을 비판하였지만 언어의 심층구조에 해당하는 건축의 심층구조를 건축의 기본적 용도와 무관한 관념적 형태로 축약했다. 벤츄리의 기둥, 창, 안테나는 기능을 탈색시킨 기하학적 도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글을 출간하고 그 후 작품을 실현했지만 그는 언어학의 이론을 일관되게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건축과 언어: 1960년대 이후 서구건축의 이론과 실험인문언어(Lingua Humanitatis) 제2집, 2001.10 제1권 2호



인터뷰Edit

-당신의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관은 건축 외에도 기나긴 논쟁과 설전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더 큰 논란이 불거지길 바랬다. 모든 사람이 그 추모관을 좋아했다면 그건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이다. 자극하고 싶었다기보다 마음을 흔들고 싶었다. 매스컴이 심어 준 이미지의 힘을 깨뜨리려고 했다.


-좀 덜 추상적이라면 더 강렬한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구체적 정보를 제공했다거나.

홀로코스트의 공포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홀로코스트를 납득할 수 없기에 무기력해진다. 그 무기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다름을 추구하고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길 원한다. 그래서 추모관이 홀로코스트라는 주제보다 그런 쪽을 더 주목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내가 다름을 맹목적으로 숭배한다고 믿는데, 그건 옳지 않다. 내 원칙들은 변함이 없다. 벽이 4개라는 것 같은 일반적 유형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모든 작업은 달라 보이고 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오랫동안 건물을 짓지 않고 이론과 조직적인 면을 연구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건축 일을 시작하자마자 건물을 지었다. 1956년 한국에서 복무하는 동안 카지노 건물을 지었는데 집중호우가 와서 지붕이 무너졌다. 1959년 코넬 대학교 기숙사 설계는 예상보다 비용이 2배나 초과됐다. 나는 뉴욕을 떠나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갔다. 아무래도 실패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내가 건축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하고 싶었다.


-이론이 설계에 도움이 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설계할 때 특정 이론을 고려하기도 하지만 도움이 안 되면 내던진다. 책을 쓰는 이유는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일부러 자리잡고 앉아 이론을 생각하진 않는다. 떠오르면 그때 생각이 흘러가게 놔둔다. 그래서 다른 많은 건축가와 다르다. 나는 스타 건축가가 아니다.


-기억되기 위해서 책을 쓰는가?

자신이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역사의 일부가 된다. 글을 쓰지 않는 건축가는 위대한 건축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급진적이고 다른 것이라는 관념은 이제 진부하지 않나? 지금은 모두가 다르고 독특하려고 한다.

나로서는 거의 똑같고 무미건조해 보인다. 건축이 지는 자율성에 대한 믿음 없이 지어졌다. 내게 건축이란 일단 기능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 시작된다. 문화의 독특한 형태로 보일 수 있는 지점에서 출발해서 영화나 문학 같은 게 줄 수 없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건축물을 제대로 느끼려면 건축가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꼭 그렇진 않지만 건축이 문화와 상당 부분 연관이 있다는 건 염두에 두어야 한다. 콜라만 마시지 말고 와인을 음미하는 방법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건축은 엘리트주의적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다행히 모든 건물이 건축은 아니다. 매일 저녁 최고급 요리를 먹는 것은 끔찍하지 않은가. 내가 건축 속에서 살고 싶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평범한 것이 받쳐 줄 때만 독특한 것이 가치를 가진다.


-건축엔 무엇이 남아 있는가?

구경거리가 되는, 하디드와 칼라트라바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새로운 통합new synthesis과 서구의 몰락에 대해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그 대안으로 피라네시의 판화에 나타난 어두운 세상에 흥미를 느낀다. 어두운 면과 무의식, 위압적이지 않은 건축 말이다.


-건축물을 해체하고 분해한다면 어떻게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가?

나는 해체주의를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건축의 힘으로 인간 정신의 무의식적이고 억압된 면을 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그너가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독일인들의 영혼의 무의식을 열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