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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Lloyd Wright

(1867~1959)

미국의 근대 건축가 . 르 코르뷔지에 의 대립쌍으로 둘을 엮어 근대 건축의 양대 산맥으로도 불린다. 그리고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



"당신이 누군지 밝히시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올시다."

"...어떻게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소이다."


-한 재판에서 재판관과 라이트의 대화 中(...)




탄생과 성장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났고, 15세 때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어서 위스콘신대학교를 고학으로 졸업하였다. 1887년 근대건축의 선구자 루이스 설리번의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배웠다. 1893년 주택건축을 중심으로 자신의 설계활동을 시작하는데, 같은 연도에 시카고에서 열린 콜롬비아 세계 전람회에 출품된 일본 전시관에서 호오덴 사원의 복원 등 일본 전통 건축을 접하게 되고, 동양의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대초원 양식을 만들다


어린 시절 프뢰벨 유치원에서 맞물리는 다양한 형태들을 가지고 놀았었고, 위스콘신주 근교의 할아버지의 농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며 대도시보다 교외지역을 선호했던 그는 당시의 주류 건축인 보자르 스타일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 고전적, 반 유럽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가 따른 것은 '유기적'관념인데, 이는 미국의 문화적 독립성을 추구한 것이기도 하다. 자연을 중요시한 이러한 자세는 미국 특유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며 '대초원 주택 양식'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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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평성이 강하다. 이는 미국 평원의 끝없는 지평선과 어울린다.
  • 공간 구성은 중앙의 굴뚝을 중심으로 십자형태이며, 벽들이 완벽하게 막혀 있지 않아 방들이 흐르듯 연결되어 유기적인 공간을 만든다.
  •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축선을 일치시키는 등 자연과 주택을 개념적으로 일체화시킨다.
  • 형태적 특성으로는 길게 뻗은 지붕과 끈처럼 이어지는 수평적인 창 배열이 있다.

이렇게 자연과 건축이 만나는 것을 연구하던 그는 도시 속에서도 이러한 만남을 시도한다. 1904년 뉴욕주 버팔로 시에 지은 라킨 빌딩에서, 사무소 건물은 외부를 향해 열리지 않고 내부를 향해 열리며 천장에 창을 내었기 때문에 외부공기와 자연광을 접촉할 수 있다. 이 건물은 환경 조절 장치를 갖춘 최초의 오피스 건물 중 하나이다. 1910년 그의 작품집이 베를린에서 출판되었고 유럽의 주류 건축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까진 좋다고 치자. 아버지의 행방불명은? 그의 인생에 서서히 헐리우드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막장드라마


이 시기 그는 거만하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기혼 여성과 오픈 카를 타며 어울리고, 비싼 옷과 풍성한 넥타이로 자신을 포장하더니 여섯 명의 아이들과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유럽으로 도피하는 만행을 벌인다. 이 때 그의 말을 들어 보자. "결혼은 인간의 굴레가 아니다. 사람이 개인적 자유와 결혼 생활의 노예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 전자를 선택해야 한다. 간통은 세상과 맞서는 진실이다."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그런데...


1914년, 그의 주택 겸 작업실 탈리에신에서 화재가 일어나 Cheney부인과 아이들이 도끼로 살해된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다시 힘을 차리고 정열을 쏟아 집을 다시 복구한다. 이 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맡은 일이 도쿄의 제국호텔. 이 건물은 지진 방지를 위해 당시의 최신 기술을 동원하여 고심해서 설계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돈과 시간을 너무 과다하게 쓴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건물은 1922년 완공되었고, 다음해 도쿄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500만의 인구 중 15만명이 사망했고 도시의 절반이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제국호텔은 홀로 멀쩡했다. 이로 라이트의 명성은 또 높아졌으며, 1970년대 도시화로 새 건물을 지어야 할 때가 오자, 제국호텔을 기념하기 위해 해체하여 나고야의 메이지 시대 민속촌에 로비 건물동을 조립해서(...)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제국호텔이 지어진 해 두 번째 아내도 얻고 다시 재기하려던 찰나.... 믿기지 않는 일이 또 일어난다. 1925년 기껏 복구한 탈리에신 주택이 다시 불타 사라진다. 화재 당시 주변 주민들은 화재진압을 돕기는 커녕 라이트가 수집했던 동양의 예술품들을 훔쳐 갔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아내와도 이혼하게 된다. 그러나 다행히(?!) 동유럽의 귀족이었던 여인을 세 번째 부인으로 맞고는 삶의 안정을 되찾게 된다. 이후 라이트는 근대건축의 역사를 쓰는 데 합류하게 된다.





20세기 유기적 건축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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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완공된 에드거 카우프만의 여름 별장인 낙수장. 물 위에 바로 집을 지었다!!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21세기가 된 아직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주택인 이 집은 엄청난 반향과 그에 따르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간단한 것은 "일단 물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살 수 있느냐" 같은 비판인데, 사실이다(...). 하지만 라이트의 자연주의적인 신념을 가장 잘 표현하였으며, 인문학적인 면에서 시적인 건축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공학적으로도 캔틸레버 공법의 혁신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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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라이트의 최후의 작품인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맨 인 블랙에서 윌 스미스가 신나게 뛰어다녔던 이 건물은 미술관 건축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건축에서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던 '평평한 바닥'의 패러다임을 바꿔놨다! 건물 전체가 경사면을 이용해 계단 없이 이어진다! 공간과 구조의 유기적인 흐름을 추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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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라이트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건물 또한 만만찮은 반대의 목소리를 이끌어낸다. 가장 간단한 것으로 "벽이 저렇게 휘어 있어서 그림이야 걸겠냐" 같은 비판인데, 이것도 사실이다(...). 현재 상설 전시는 원형 공간에 붙어 있는 평범한 사각형 방에 주로 되어 있다고. 화가나 큐레이터들은 공간 자체가 예술이라서 다른 예술과 충돌한다고 불평한다.

아쉽게도 구겐하임 건물이 완공되기 몇 달 전에 평생을 논란 속에서 살았던 풍운아는 9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영향과 평가


여러 모로 르 코르뷔지에와 비교된다. 도시와 기계를 찬양하며 대량생산에 의한 효율을 주장했던 코르뷔지에와 달리 자연을 찬양하며 보다 장인적이고 맞춤생산에 의한 다양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르뷔지에가 이후 모더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처럼 라이트는 자연적인 건축, 환경적인 건축에 큰 영향을 준다. 그리고 동양의 건축기술과 양식을 서구에 알린 것도 큰데, 일본 건축의 영향도 많이 받았지만 서양 최초로 온돌 난방을 사용했다!


온돌이라기보다 그냥 바닥을 뜨겁게 하는 난방법이지만, 이전의 서구 건축에서는 이러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서 라이트는 온수 파이프를 바닥에 까는 방법 자체를 새로 고안해내야 했다. 라이트가 일본의 한 주택에서 온돌을 경험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일본 내 한국식 주택에서 바닥난방을 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판도 많은데, 앞서 나온 것처럼 그의 건축에 대한 논란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라이트의 업적이 부풀려졌다는 의견도 있다. 유럽의 건축적 역사에 비해 내세울 게 없었던 미국이 자국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대대적으로 선전했기 때문이라는 의견.


어록


"자연을 관찰하라. 자연을 사랑하라. 자연과 가까이하라. 자연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건축은 인간이 위대하다는 가장 위대한 증거이다."

"내 건물에 물이 새서 책상 위로 떨어진다고? 그렇다면 책상을 옮기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