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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건축가 (1955~2001)



1955년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1982년 인하공전 건축과를 졸업했다. 김중업건축연구소 등에서 실무를 배우고 1987년 아꼴건축연구소를 개소해 운영했다.


한국 현대건축에 그야말로 갑툭튀해서 새로운 건축을 던져놓고 요절한 건축가. 그에게 붙은 별명으로 무규칙 토종 건축가 가 있다.





차운기의 건축은 사실 누구나 한 번 쯤 진품이 아니더라도 그를 따라한 유사 건축을 보았을 정도로 강한 스타일로 남아 있다.


택형이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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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곡면의 지붕에 깨진 옹기 조각을 덮은 이러한 스타일은 너무나 독창적으로 한국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기에 건축계와 대중들은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소박함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존심, 그리고 폐자재를 이용한 재활용의 미덕 등에 사람들은 열광하게 되었고, 전국에 이를 따라한 주택과 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게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들을 즐거움으로 완성했다. 너희들 맘껏 자라나 너희가 우리 나이되면 더더욱 맛이 나는 집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때 토끼풀 반지 만들어 서로 끼워주며 함박 웃어보자."

이 집에 대한 차운기의 글이다.




재건여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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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회가 설계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교회를 짓기로 정한 후 건축주인 목사님은 차운기에게 나중에 디자인 안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시간이 흐른 후 차운기가 건축주에게 제시한 그림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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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도 아니고, 건물의 모습도, 평면도나 단면도도 아닌 이런 그림 한 장을 들고 와서 하는 소리는 사람, 어머니, 따스함(...)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지어졌다는 것!


그 목사님은 오히려 사람 이야기를 하던 그 모습에 반해 건축을 맡겼다고 하고, 독특한 형상 때문인지 타 교회에 비해 교인이 많다고 한다.






우혁이네 집


이 집의 설명은 차운기의 글로 대신한다.


"세상이란,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도 세상이고, 봄이 되면 나무에 움이 트고, 여름이면 푸르러 녹음을 만드는 것도 세상이지. 이 집은 본래 감나무, 대추나무가 두 그루 있었어. 이놈들이 봄 되면 움트고, 여름 되면 녹음 만들고, 가을이 되면 열매 만드는 거야. 그놈들 죽이면 되겠어? 그놈들을 살려야 되지 않은가. 그러니 집 설계가 엉망이지.

그래도 이 조그만 땅에 그놈들 살릴 수 있으면 좋지 않겠어? 주변에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어 삭막하기 그지 없는데, 집이 좀 작아지면 어떠냐? 그래도 난, 내 만든 집이 좁아져도 그 나무 보고 사는 게 좋아. 고향 같잖아? 집주인도 찬성하고 말이지.

그래서 봄 되면 꽃 피고, 움 트고, 가을 되면 먹음직스런 열매가 맺힌다는 게 난 좋고, 거기에 녹물이 흐르면 우리 늙어가면서 생기는 얼굴 주름살처럼 내 기쁜 표정, 내 노한 표정, 내 슬픈 표정...내 기쁜 표정 생겨날 때 나 또하나 즐거움을 갖지 않겠나.

친구, 난 인생은 잘 몰라도 이것이 내 살아가는 방법이네. 이 집을 오가는 사람들이 즐거워했으면 좋겠네. 글쎄, 내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집을 하나 만들었네.

자네가 내 생각하고 같다면 소주 한 잔 사주게."




영향


자본과 영합한 포스트 모던 건축이라는, 이미 20년은 지난 양식을 사용한 국적 불명의 건물들이 양산되며 점점 뒤처져만 가던 한국 건축계에 토종 건축, 재활용 건축, 감성 건축 등의 새로운 화두를 남겼다. 정체되어 가던 건축계에 활력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멀어져가던 대중과 건축의 사이를 이어 주기도 하였다. 여러 모로 이 사람과 비교되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젊은 나이에 사망한 점.



물론 비판도 있다.


프랭크 게리와 같이 강한 형태를 가진 모든 건축가와 마찬가지로 실제의 기능보다는 모양에만 치중하며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단적인 예로 앞에 나왔던 재건여수교회는 부드러운 형상을 만들기 위해 제대로 된 구조법을 쓰지 못하고 철근을 다발로 얼기설기 넣었다(...) 그래서 해풍으로 인한 콘크리트 균열로 비가 샌다. 매년 보수를 해야 한다고. 강렬한 개성 때문에 건축주 상당수가 너무 튀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원래 건물을 개보수했다고 한다. 건축적으로 너무나 뒤처지고, 예술과 지적 토대가 부족했던 사회였기 때문에 위의 단점이 더욱 심화되고,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점도 고려해 보자.



이야깃거리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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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만 화백의 식객 52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셨다. 허영만 화백은 실제로 친분이 있으셨고, 만화 속에서 위암 투병 중에도 음식잡지를 보며 식욕을 달래는 것도 실화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