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가 라이프니츠 철학을 재해석하며 도출한 개념. 복잡하다.
주름 개념은 사물의 존재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흙, 물, 공기, 불의 요소들로 세계가 이뤄졌다고 했고 16세기의 철학자는 원자나 입자 같은 단위로 이뤄져 있다고 봤다. 그렇지만 라이프니츠는 '무한히 분할 가능한 입자'라는 데카르트의 개념은 관념적 존재에 불과하며 실체가 될 수 없다고 본다며 '모나드'라는 원소를 제안한다. 이것은 연장도 모양도 존재하지 않으며 분할도 가능하지 않다. 출입할 수 있는 창문도 없고 단지 일정한 질만을 가지며 계속해서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들뢰즈는 이런 모나드를 주름 개념으로 재해석했다. 주름을 입자와 같은 실체가 아니고 끊임없이 분화하는 잠재성으로 이해하고, 거기서 부분들은 부분과 부분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응집력을 유지하는 더욱더 작은 주름으로 무한히 분할된다고 믿었다. 이 생각을 따를 경우 "연속된 물체의 구분은 입자로 간주되어서는 안되고 주름 잡힌 종이나 막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결코 점이나 최소 단위로 분해되지 않고 무한히 작은 주름을 가진다."
시공간에서는 데카르트는 물질과 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3차원적으로 설명하는 데카르트 좌표계를 주장했다. 이에 비해 뉴턴은 물질과 공간들 분리했다. 라이프니츠는 둘 다를 거부하며 공간을 서로 공존하는 실체들 사이의 질서로 정의했다. 따라서 실체가 없는 곳에서는 공간도 없다. 공간은 상대적인 관계일 뿐 더이상 실체가 아니다.
들뢰즈는 라이프니츠의 생각을 발전시켜 "이 우주는 능동적인 힘에 의해 압축된 것과 같다."며 우주 전체는 서로 다른 물결과 연못이 있는 물질의 연못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들뢰즈는 유기체와 비유기체를 동일한 차원에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똑같은 물질이지만 작용하는 힘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기체에 작용하는 힘은 조형력으로, 태어날 때부터 형성되어 있는 규정들을 따라 내재적으로 작용되는 힘이다. 비유기체에 작용하는 힘은 한번은 탄성력으로, 또 한번은 조형력으로 접힌 것과 같아서 전자에서 후자로 이행할 수 없기 때문에 유기체와 다르다고 보았다.
이런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름들은 살아 있는 알처럼 내재적인 원인에 따라 잠재성으로부터 현실로 생성되어 나간다. 이는 세 가지 층위를 거친다.
- 잠재성의 층위 - 어떤 질료도 미분화의 상태로 남아 있다.
- 개체성의 층위 - 강도의 차이에 따라 개체로서의 차이들이 분화된다.
- 현실성의 층위 - 구체적인 모양과 질을 가지게 된다.
들뢰즈는 이를 주름이 바깥으로 펼쳐지는 운동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안족으로 접는 운동이 있다. 그것은 깊이를 만들고 밀도를 압축시켜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철학, 과학, 예술 등의 창조적 행위는 잠재성을 안쪽으로 접어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술가는 주위의 일상적인 소재들을 선택해 그 의미의 밀도를 높이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현대의 건축가들은 질 들뢰즈의 주름 개념이 가지는 잠재성에 주목하고 여러 영감을 이끌어 냈다. 그 과정에서 랜드스케이프 개념 이 중요하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