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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이후 ‘언어건축실험’의 경향과 그 영향에 대한 항목.

아래는 김성홍씨의 설명.


건축과 언어의 접목은 두 영역이 유사한 구조와 내용을 갖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르네상스 이론가 알베르띠가 건축이론을 집대성한 이후 건축계에는 건축의 요소와 이를 구성하는 문법적, 수사적 법칙들이 있었다고 믿었다. 이러한 건축의 언어적 특성을 이론과 실험으로 전환한 계기가 바로 언어학을 비언어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기호의 과학’, 즉 기호학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어떤 이론을 수용하거나 차용할 때 배경과 맥락을 간과하여 이론을 왜곡하기가 쉽다. 건축에서의 기호학의 도입 역시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에 대해 대체적으로 비판적이다. 건축의 복합적 측면을 간과하고 시각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였다는 것이 비평의 주된 내용이다.


1960년 후반의 반근대주의 운동은 사회, 문화, 기술 등 건축외적 상황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건축외적 상황뿐만 아니라 근대건축 내부에서도 그 동인을 찾을 수 있다. 1920년대 이후 근대건축은 서양건축사에서 천년 이상 이어져 왔던 ‘표상’의 기능과 역할을 부정하고 소거하려고 하였다. ‘표상’은 조형예술의 본질적 목적이다. 표상은 어떤 ‘매체’를 통하여 ‘매체’ 자체가 아닌 다른 무엇, 즉 의도하는 ‘내용’을 지칭하거나 함축하는 행위와 이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시대 이래 수 천년 지속되었던 석조건축의 기둥양식은 구조적 기능 이상의 표상 기능을 하고 있었다. 도리아식은 간결하고 힘있는 형태로 수려한 곡선의 코린트식 기둥과 대조를 이루고, 두 기둥 양식은 그리스신화의 남성과 여성에 비유된다. 기둥이 `형식'이라면 그 것이 함축, 지칭하는 남성과 여성은 `내용'이다.


조형예술은 이처럼 본질적으로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물리적 형식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또한 ‘표상’은 ‘미’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 미는 감각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집단이 만들어낸 집합적 상징체계를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절대적 미는 상대적, 자의적, 관습적 미와 구별된다. 공통의 가치관의 붕괴하여 18세기 이후에는 표상의 기능이 약해지거나 와해된다. 건축형태와 그 의미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는 1920년대를 전후하여 절정을 이룬다. ‘문화적’ 요소를 배제한 자율성 이론은 그 후 근대건축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건축계에서는 소거되었던 ‘문화적 표상’, ‘상징’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언어학의 도입된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건축과 언어의 접목을 가장 먼저 시도한 사람은 필라델피아 건축가 로버트 벤추리 이다. 그는 몇 개의 실험적 주택작품을 설계한 후 자신의 건축을 이론화한 “건축에서의 복합과 대립(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을 출간하여 근대건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입장에 섰다.


그가 근대건축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근대건축의 무미건조한 형태이다. 벤츄리는 단순한 형태는 하나의 의미, 고정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대립, 복합, 애매함, 긴장, 이중성이다. 자세한 내용은 로버트 벤추리 항목 참조. 그의 관점은 처음부터 근대건축을 시각적으로 보는 한계를 드러냈다. 대중에게 호소할 건축 요소를 강조했지만 이 요소들을 통합할 전체적 질서와 논리는 없었다. 부분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과 이를 연결하는 위계가 없었던 것이다.


벤츄리 이후 건축과 언어를 이론으로 정리한 사람은 건축이론가 찰스 젱크스(Charles Jencks)이다. 그는 1977년 출간한 “탈근대건축의 언어(The Language of Post Modern Architecture)”에서 건축을 기호로 보는 벤츄리의 관점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견해를 보였다. 그는 건축의 본질적인 기능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라는 점은 동의했지만 소통하는 방식을 상징(장식 헛간)과 아이콘(오리)으로 단순화 한 점은 극단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근대건축을 오리와 같은 아이콘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기피와 기의가 형태상으로 닮은 경우가 아이콘인데 르꼬르뷔제의 롱샹교회의 경우 배, 손, 모자, 수도자의 모습으로 읽혀지기는 하지만 어떤 것과 뚜렷하게 닮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러 개로 해석되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서 롱샹을 은유라고 해석한다(Jencks, 1977).


벤츄리는 근대건축가들이 공간, 구조, 프로그램의 건축체계를 아이콘으로 왜곡하였다고 보는 반면 젱크스는 오히려 근대건축가들이 아이콘의 은유적 의미를 부정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점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소비문화에 대해서는 두 사람은 묘한 일치를 보인다. 건축을 대중과 소통하는 기호로 보았고 근대건축이 경시했던 일상의 풍경에서 시각적 유희와 해학을 찾았다. 벤츄리는 목구조로 양산된 평범한 건축 위에 붙여진 간판에서 상징성을, 젱크스는 할리우드 배우가 사는 절충주의 호화주택이나 도넛 모양의 상업건축에서 상징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상징은 대중문화 속의 소수집단이 공통분모로 여기는 기호였다. 삶과 행위가 전개되는 공간과 그 사회문화적 의미보다는 대중에게 주입된 시각코드(visual code)를 소통의 주요 매체로 보았던 것이다.


젱크스와 벤츄리가 옹호한 상징주의는 아이 만(Peter Eisenman )에 의해 격렬한 비판 대상에 놓인다. 아이 만은 오브제 중심의 벤츄리와 젱크스의 이론을 비판하고 구체적 이미지를 배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전환하고자 했다. ‘오브제’가 시지각의 대상이라면 ‘관계’는 감각과 경험의 대상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관념의 영역이다. 아이 만은 건축 뿐 아니라 20세기의 회화도 오브제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아이 만은 소쉬르의 언어학의 한계를 보완하는 촘스키의 이론을 변용했다. 소쉬르의 구조주의적 언어학을 따르면 사물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못하고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해 가치를 가진다. 모든 사물은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다고 믿었던 고전 언어학의 전제를 뒤집고 소쉬르는 소리는 다른 소리와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고 보았다. 언어를 명사들의 집합이 아닌 관계성으로 보았던 것이다. 즉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하나의 기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기표와 기의에는 말하는 사람 즉 화자의 존재가 없다는 비판이 따른다. 건축을 기호로 볼 때 주체의 문제는 더욱 부각된다. 아이 만이 촘스키의 이론을 받아들인 것은 바로 말하는 사람의 창조적 능력을 이론화한 부분 때문이다. 촘스키가 언어를 실용론(pragmatics), 의미론(semantics), 구문론(syntactics)으로 나눈 것처럼 건축 역시 유사한 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아이 만의 생각이다.


자세한 내용은Peter Eisenman 항목 참조. 그러나간델소나스는 언어학의 이론을 건축에 곧바로 대입하려했던 아이 만의 모순을 지적한다 (Gandelsonas, 1973; 1974). 우선 촘스키의 이론에서 언어주체의 창의성을 건축에 대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촘스키가 말하는 창의성은 모든 인간이 갖고 태어난 생물학적 특성으로 특정한 시기에 문법구조를 파악하고 보다 어려운 언어를 구사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건축에서의 주체는 결코 모든 인간에 해당되지 않으며 교육과 경험을 쌓은 소수에 한정된다.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는 시기는 유년기가 아니라 오랜 교육과 경험을 쌓은 성년이 되어서이며 이 과정은 죽음에 이르는 시기까지 계속된다. 촘스키의 창의성이 생물학적 특성이라면 건축의 창의성은 사회적 과정에서 습득하는 후천적이다.


둘째, 고전건축 이래 건축형태는 관습적으로 형성된 의미를 지녔지만 결코 언어와 같이 확고한 의미체계는 없었다는 것이다. 가장 쉬운 문의 예를 들어보아도 의미를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문은 용도와 관련된 의미, 즉, ‘들어가는 곳’, ‘나오는 곳’의 의미를 갖는다. 문은 또한 창, 기둥, 벽과의 인접요소와의 관계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더 나아가 비례, 리듬, 수평, 수직관계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언어에서 단어와 같은 분명한 의미의 단위를 건축에서 분리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이점에서 간델소나스는 고전건축 이래 건축이 형태체계를 가졌다고 보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언어와 달리 사회구성원 전체가 건축형태를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비록 공유하는 의미가 있다하더라도 그 기간은 일시적이다. 언어에서의 구조적 관계를 물리적 형태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보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것이다.



젱크스 역시 구문론을 건축에 적용했는데 그와 아이 만의 방법론을 비교해보면 ‘건축=언어’의 함정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아이 만은 근대건축에서 의미론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보는 반면 젱크스는 구문론이 압도했다는 상반된 견해를 가졌다. 젱크스는 문, 창, 기둥, 벽 등의 기능과 관련된 요소를 언어의 단어나 구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구문은 이러한 요소를 조합하는 법칙이나 과정으로 해석했다. ‘바닥과 천장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중력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사람이 거주하기 위해서는 바닥은 평평해야한다’ 등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 건설하는 것이 건축에서의 구문이라는 것이다. 뷔올레르뒥, 젬퍼, 쉬와지 등의 18세기 건축이론가 이후 근대건축은 이러한 기술적 구문론에 집착했다고 주장했다. 젱크스의 관점에서 아이 만의 구문은 이성과 논리를 앞세운 기하학 구성에 불과 할 뿐이었다. 반면 아이 만은 젱크스처럼 건축의 단위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전제했기 때문에 구문은 건설의 과정이 아니라 기하학적 추상성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언어와 건축을 비교의 영역으로 보지 않고 언어를 건축을 투사하는 보편적 이론틀로 접근했기 때문에 오류는 필연적이었다.


간델소나스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언어의 구문론적 요소보다는 '문학적 담론(literary discourse)' 즉 수사학과 건축에서의 구문을 비교하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고 주장했다(Gandelsonas, 1973, 119). 수사학은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서구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방식이었으나 건축에서 표상이 배척되었던 것처럼 근대주의 문학에서 약화되었었다. ‘수사’는 하나의 ‘담론(discourse)’을 토대로 또 다른 ‘담론’이 만들어진 것을 일컫는다. 한 두 페이지에 요약할 수 있는 소설의 ‘삼각관계’는 한 권의 분량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간델소나스는 건축 역시 하나의 담론에 또 다른 담론이 구축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학처럼 건축의 담론도 소수만이 접근하는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집’은 영구불변의 의미를 가지지만 그 것이 구체화되는 형태는 다양하다. 용도, 기능과 관련된 전자의 의미를 ‘일차 담론’이라고 한다면, ‘집’의 의미를 전혀 왜곡하거나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공존하는 의미는 ‘이차 담론’이다. 아이 만의 실험에서 기둥에서 벽, 벽에서 볼륨으로 전환하는 기하학적 게임은 일종의 ‘이차 담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 만이 정의한 심층구조가 건축의 물성을 배제한 유클리드 기하학이긴 하였지만 근대건축의 수사적 메카니즘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간델소나스의 평가이다.



서양의 고전건축에서는 바닥, 벽, 기둥, 지붕, 문처럼 용도와 구축의 과정에 따라 건축을 요소로 분류하였고 각각의 요소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가졌었다. 그러나 근대이후 새로운 기술과 재료의 등장은 건축형태를 구축방식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켰다. 현대회화와 밀월 관계를 유지했던 1920년대 건축형태의 動因은 자연형태나 기계와 같은 다양한 참조체들로 확대되었다. 1960년대 후반 언어학의 도입은 건축형태를 언어와 같은 단위로 해체할 수 있는가 하는 근대건축의 본질적 물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앞의 논쟁이 시사하는 것은 건축을 언어로 볼 것인가 하는 원론적인 질문이 아니라 건축을 어떤 측면에서 언어로 볼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문자는 모음과 자음, 알파벳과 같은 단위로 쪼개진다. 영어 단어 a와 b를 아무리 붙여 쓰더라도 구성상(syntactically)으로나 의미상(semantically)으로 둘 사이에는 공백이 존재한다. 그리고 아무리 갈겨쓰더라도 그 의미는 바뀌지 않는다. 글자의 모양에 관계없이 문자는 일정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반면 그림에서 알파벳처럼 떼어 낼 단위체를 구별하기란 불가능하다. 세잔느의 그림 ‘빅토와르산’에서 붓의 터치, 비례, 색상, 이미지는 구성상이나 의미상으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몬드리안의 그림과 같이 추상적 회화에서도 이점이 적용된다. 면과 면의 관계가 어우러져 하나의 총체적 그림을 만들어 낸다. 한 부분의 위치와 색상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그림 전체의 의미도 바뀐다. 부분의 의미는 전적으로 전체와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넬슨굿만(Nelson Goodman)은 “그림은 연속적이고 글은 단속적이다"라고 말한다 (Mitchell, 1986, 68)


문자를 디지털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그림은 아날로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은 아날로그인가? 디지털인가? 건축공간을 구문론적 관점에서 연구한 힐리어는 건축을 언어, 수학, 음악에 비교했다. 수학은 매우 한정된 숫자(어휘)를 갖지만 반면 많은 공식(구문)을 갖는다. 반면 언어는 수학에 비해 많은 어휘와 적은 문법을 가진다. 음악은 수학보다도 적은 어휘를 가지고 거의 무한정의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건축에서의 구문은 공간과 공간이 연결된 체계로 해석할 수 있으며 공간의 관계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Hillier, 1984). 공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문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공간구문의 사회적 측면은 벤츄리의 대중기호, 아이 만의 추상기하학의 오류를 보정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후반이후 상반된 ‘언어건축실험’은 건축과 언어는 동질성과 특이성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다. 벤츄리처럼 건축을 ‘어휘(lexicon)’로 보는 것이 극단인 것처럼 아이 만처럼 ‘구문(syntax)’으로만 보는 것 역시 극단이다. 르네상스이후 서양건축은 ‘어휘’와 ‘구조’를 일관된 체계로 묶으려 하였고 18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시도는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근대건축이후 어휘와 구조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모호해졌다. 건축형태를 도출하는 동인이 무한해졌으며 건축가의 선택의 폭이 그만큼 확장되었다. 건축형태를 생성하는 동인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구체화하는 논리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새로운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1960년대 이후 이론과 실험은 근대건축의 엄격한 규범과 원리가 있었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였다. 1920년대 아방가르드 운동이 건축을 시각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면 ‘언어건축실험’은 건축을 인문학의 영역과 교류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1980년대 후반 탈근대주의 건축이 퇴조하면서 건축계는 근대건축과 탈근대건축을 보완하는 경향을 띄고 있다. 이점에서 ‘언어건축실험’이 던졌던 질문은 현대건축에도 살아있으며 때문에 지속적이고 내밀한 담론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건축과 언어: 1960년대 이후 서구건축의 이론과 실험인문언어(Lingua Humanitatis) 제2집, 2001.10 제1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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