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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인 구조가 아닌 언어와 사고, 논리에서의 구조 개념을 다룬다.


언어학에서는 20세기 초 수학에서 제기된 군 이론과 물리학 분야의 장 이론의 영향을 받았다. 서양에서 오랫동안 물질과 공간은 근본적으로 별개의 개념으로 간주되어 왔고, 근대의 기계론적 세계관 역시 '빈 공간'과 '운동하는 입자'라는 생각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패러데이는 19세기 초반 자기장이나 전기장이 에너지를 가지면서 분자들의 움직임을 결정짓기 때문에 독립된 물리적 실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훗날 맥스웰 등이 체계화하였다. 20세기 들어서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원리에서 중력장 개념을 도입했고 그것을 위상기하학과 결합하여 물질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의 개념을 새롭게 규명했다. 양자론을 확립한 과학자들도 소립자들을 실체가 아니라 에너지의 집적물인 파동으로 간주했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이란 장이 극도로 강하게 집중된 공간의 영역에서 성립되는 것이고, 이 때문에 장이 곧 유일한 실재가 된다"라고 했다. 이 경우 공간과 입자의 구분이 사라진다. 이는 20세기 서구인들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장 이론에서 중요한 점은 대상들이 주위 공간의 모습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역으로 거기서 생겨난 장에 의해 대상이 본질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전체 문법과 개별적 발화의 관계도 장과 물질의 관계와 대단히 유사하다고 본다. 여기에서 영향을 받아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에서 구조 개념을 발전시켜 언어, 친족, 교환, 신화와 같은 문화 현상들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는데, 그들 모두는 의사소통의 각기 다른 형태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경제학이나 인류학 등에도 구조주의적 방법에 적용할 수 있다고 봤는데, 구조주의적 분석이란 현상의 무의식적인 하부 구조를 검토하는 것으로서 시작하여, 그런 하부구조의 요소들을 독립된 실체가 아닌 관계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거기서부터 구조 체계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조체계를 추출해내면 그것은 각 현상에 기저하고 있는 패턴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으로 상정되었다.


이 구조개념은 사람들이 대화하면서 잠재적으로 공유하는 문법체계와 유사하다. 다양한 단어와 문장들이 자의적으로 사용되지만 그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법체계는 거의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각 개별 단어들과 문장들은 전체 문법 체계와 일치할 때 비로소 의미를 발생시키고 또한 의사소통이 된다. 구조주의자들이 주목하는 대목이 바로 이런 자율 통제적이고 자기 유지적인 특징이다.


구조는 두 가지 독특한 속성을 가진다.

  • 구조는 잠재적인 방식으로 실재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면 목소리라는 실재는 있지만 그 속에 구조가 담겨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들의 대화 내용의 구성 요소들을 모두 분석해봤자 구조는 파악되지 않는다. 다양한 현상들을 본질적인 것으로 환원시켜봐도 구조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구조가 다양한 현상의 배후에 숨어 있는 본질하고는 전혀 상관없기 때문이다. 구조주의가 환원주의나 초월주의와 대척점에 위치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구조는 하나의 이론적 대상이지 독립된 하나의 기정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문제의 난점은 어떤 발생 과정을 거쳐 구조가 실질적으로 실현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 언어가 실재를 명료하게 표상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실 잠재적인 구조를 접고 있는 언어가 실재의 존재 방식을 생성시킨다.

이것은 우리가 언어를 통해 사물의 의미를 파악한다는 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표상 언어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구조는 제약이면서 동시에 실행 가능성을 부여한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일 경우 모든 언어에 선행해 존재하는 실재를 연역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다. 이를 확대하면 인간 의식도 필연적으로 선행해서 존재하는 구조화된 담론에 의해 지배된다고 이해된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이 언어 세계 속에 사는 한 주체는 기표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인간의 정신은 언어처럼 구조화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나무'라는 실재 대상물을 보고서 '나무'라는 말을 습득하는 게 아니고, 반대로 '나무'라는 말을 통해 '나무'라는 실재 대상물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 체계가 아이들 이전에 존재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기표를 통해서 언어체계로 접근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따를 경우 [주체에 의해 이 세계가 표상되고, 그 표상의 기반은 동일성]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 정인하, [현대 건축과 비표상]


참고: 비표상 , 자기 지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