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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수학여행 에서 민원홍 에 의해 형성된 서사시(...)



민원홍의 구술Edit

‎2007년에 세워진 강경국 .

태조 강경국. 첫째 왕비 종빈. 둘째 왕비 창빈. 강경국 사람들을 부르는 말 신정인.
신정인의 주식 문현식.
신정인 중 10세 미만의 아이들을 특히 최원아라 부른다.
문현식은 김지우 를 이용해 강은지에서 경작한 쌀이 주가 되었다.
특히 찰지고 기름진 일등급 쌀, 박미(희)가 유명하다.
강경국에선 특히 건축 문화가 발달하였는데, 유균형 양식으로 지어진 경연성은 그 중 으뜸이다. 경연성의 특징 중 하나는 미려한 기둥으로, 웅장한 김형주와 섬세한 진민주가 뛰어난 조화를 이룬다. 경연성이 위치한 백도현 방누리에 흐르는 이진강 상류에선 양명석과 오관석이 풍부하게 채취되었다. 섬세한 무늬의 양명석과 선굵은 무늬의 오관석은 경연성의 외벽과 바닥에 조화롭게 사용되었다. 종빈이 기거하던 경연성은, 창빈과 종빈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 때 크게 파괴되어서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
두 왕비의 전쟁은 무척 치열했다. 전쟁 초기, 종빈군은 거짓으로 패한 척 하며 고유림이라는 숲으로 창빈군을 유인했다. 기세좋게 종빈군을 쫓던 창빈군은 종빈군이 미리 펼쳐놓은 박승진과 한유진에 걸려들어 크게 패주했다. 이 전투를 계기로 두 왕비의 전쟁은 종빈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듯 했지만, 김우건이라는 신무기를 사용한 창빈군이 전세를 뒤집고 결국 종빈의 본거지 경연성을 차지하게 되었다. 전쟁에서 패한 종빈은 결국 박재현으로 유배당하게 된다.
박재현에서 하루종일 조유리로 만들어진 이보경(鏡)을 바라보며 창빈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던 종빈은 박재현에서 생산되는 정호철과 정인철을 이용해 최강의 전함 정민선을 만들고 본토 상륙 계획을 세운다. 박찬호로 명명된 정민선은, 하지만 정호철이 지나치게 무거웠던 까닭에 본토와 연결된 박다해에 뜨지 못하고 가라앉고 만다. 박찬호에 탑승했던 승무원은 모두 전사했고, 이들의 죽음을 슬퍼한 종빈은 그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매년 정월 초하루에 김가영(靈)제를 지냈다. 김가영제를 지내던 전통은, 종빈이 빡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 변희영제로 이어져 지금까지 내려져 오고 있다.

강경국은 사계절이 뚜렷했다.
봄에는 특히 윤여춘 기간이 무척 따스로워서 최원아들이 무척 좋아하며 뛰놀았다고 한다.
여름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강경국의 국목인 서영수가 빽빽히 들어찬 표하림에서 피서를 즐기곤 했다. 표하림에는 김승범이 많이 서식했기 때문에 피서를 온 신정인들이 종종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가을엔 서영수가 민원홍빛 붉은 낙엽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뤘다.
강경국의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고 한다. 12월 둘째 주 부터 셋째 주에는 특히 이정한이 몰아쳐 많은 신정인들이 고생했다고 전해진다. 이 기간에는 눈도 많이 내려 허지은빛으로 물든 표하림과 고유림을 구경하는 신정인이 많았다.

태평성대를 이루던 강경국은, 2010년에 창빈의 폭정으로 탄압 받던 천민계층, 황남인들의 반란 때, 창빈군이 황남인들에 의해 개량된 박승진에 다시 한번 크게 걸려들어 전멸하며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졌다.


김지우의 구술Edit

야사로 2010년 마지막 전투가 있었으니

...(전략)...강력한 신 박승진에 의해 승기를 잃었지만 창빈군의 세력은 여전히 강성해 수원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왕조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강경국 전부를 되찾고자 하는 열망에 창빈은 최고의 무리수를 두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부를 건 1:1일기토였다. 황남인군은 김지민 등의 서민으로 이루어져있어 훌륭한 장수가 없을 것이라는 계산. 일기토는 두 진영을 가로지르는 이지하의 수원지인 '허지'였다. 백수연이 흐드러지게 핀 물가에서 두 군의 핵심 세력이 모여 협상을 성사시켰고, 일기토가 시작되었다. 창빈측에서는 최강의 육체를 가진 창빈이 직접 나왔다. 그러나 진정한 반전은 남인측. 전설로만 남은 창빈의 천적이었던 서민인 이창민을 데려온 것이었다. 창빈은 근력과 지구력으로 대항하려했지만 창민의 강력한 마르타 한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 일기토의 결과로 총사령관 창빈이 붙잡힌 강경국은 몰락했고, 이 싸움으로 최수훈을 세운 이창민은 영웅이 되어 패한 창빈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창빈은 이후 머리를 깎고 김범중이 되어 경전을 번역하는 데 몰두했다. 그중 호세에 알려진 것이 분노와 슬픔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이진경'이다.....(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