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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국이 진행하는 2012~2013 겨울 아키수다 정리



주제 : 공간지를 통해서 본 한국건축계 (흑)역사Edit

주제선정이유Edit

건축 실무에 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각종 매체에 보도되는 건축 관련 이슈에 대한 소식을 듣다보면 한국에서 건축(특히 설계)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었고, 건축계에서는 어떤 노력을 했기에 현재와 같은 환경이 만들어 졌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기사를 정리해보니 주로 공공건물의 대형 현상설계 프로젝트에 관련된 기사가 많으며, 이후 건설사와의 관계, 저작권 문제가 논의되었다.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려 노력했지만 나름 기사수가 많고 작성자가 근성이 부족하니 이해해줬으면 한다.



본문Edit

공간지에 처음으로 등장한 관련 기사는 국립종립종합박물관(현 국립민속 박물관)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1993년 4월호(306호)에 한국 근현대의 건축을 사회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송율씨가 작성한 '60년대 건축가와 건축'에 이전 내용이 있으니 거기서 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필자는 60년대가 한국현대건축, 한국모더니즘 건축의 출발이라고 설정하면서(50년대에는 6.25 등의 이유로 진정한 의미의 근대성을 이루기 힘들었다고 평가) 60년대의 건축가나 건축계의 위상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건축전문직의 사회화 과정 - 건축사법 제정

건축가와, 건축계를 다루기 위해서는 근대의 건축전문직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서양의 경우 르네상스 시대 이후 건축가가 사회적 엘리트로 출발하였으며, 부호들의 후원과 함께 성장해 나아갔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건축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양산형 건축가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건축가들의 사회적 지위가 흔들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엘리트 작가 건축가들은 배타적인 단체를 구성하게 되었고 나머지 건축가들은 업자건축가로 구분되었다. 건축가들의 협회는 믿을 만한 전문건축가를 양성하고 그 대신 배타적인 권한을 부여 받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때 건축대서사(건축사의 전신)가 생겨나며서 전문화가 이루어 진 후 그것이 건축사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38년 건축대서사취체규칙 제정 (총 건축대서사 219명, 한국인 70여명)

-1946년 해방 후 최초 조선건축사 자격시험 (건축대서사의 연장)

-1956년 건축학회 주관 건축사법 초안 작성

-사협회의 부당한 주장으로 합의 실패

-1961년 건축학회와 건축가협회가, 건축사협회가 각각 법안을 출

-1963년 건축 3단체와 정부가 합의하려 했으나 건축사협회에 특전을 준 안으로 결정, 이후 계속 싸움

-1965년 4월 1회 건축사 시험에 무시험 전형(!) 으로 350명 합격. 학사 출신 800여명 응시 거부


보다시피 건축사협회와 건축가협회사이에 건축사법제정과 관련해 계속해서 갈등이 일어나는데,  주 원인은 과거 건축대서사출신에 대한 특혜 때문 이라고 한다. 건축대서사제도 일제가 전시 당시 자원의 낭비(민간건물의 신축)를 제한 목적으로 만들어져서, 양질의 건축가를 선발하기 보다는 단순히 수를 제한하는 목적이 강하였다. 이 제도가 그대로 해방후에도 이루어져 1946년, 아직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는 조선건축사협회가 자체적으로 건축사 시험을 치루기도 하였다. 이때 건축사는 건축대서사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1965년에 최초로 치루어진 시험은 심지어 무시험 전형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건축대서사 - 건축사는 그야말로 허가를 대행하는 업무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학력이나 실무 경력도 전혀 필요치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50년대 후반 등장한 작가건축가들은 건축대서사를 무시하고 특혜를 주는 건축사법, 이들이 모인 세력인 건축사협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건축가협회를 진정한 자신들의 단체라 생각하였고, 두 단체의 갈등이 시작된다.

송율은 전 후 복구와 개발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허가방을 양산한 건축사법도 필요한 단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상설계Edit

초기 건축계는 이렇게 형성되었으며, 당시 시대적 상황상 공공건축 위주로 건축활동이 일어나면서 다수의 현상설계경기가 치뤄지게 된다.

-1958년 남산 국회의사당

-1960년 4.19 기념탑

-1962 부산 민중역사

-1963 중앙청 동별관

-1963 남산 시립도서관

-1963 건설센터

-1963 부산시민회관

당시 지속적으로 현상조건과 절차의 민주성,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조금씩 제기되어 왔지만 60년대 초반까지는 별다른 목소리가 없었다.(죽기는 싫었을테니) 하지만 60년대 말에 건축가들의 반발이 점차 가시화 되었고, 66년 국립종합박물관 현상을 기점으로 심각하게 논의되기 시작한다.


국립종합박물관


워낙 그 규모도 상당하고, 상징성과 중요성도 높았고, 당시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전통계승과 한국성에 대한 문제가(어쩌면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은) 한번에 얽히고, 무엇보다 말도 안되는 규칙 덕분에 큰 이슈가 되어 공론화되었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66년 6월 18일 문화재관리국이 신문에 모집공고를 발표하면서 일이 시작되는데 그 중 일부를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4.응모설계도서는 일체 반환치 않으며, 판권은 주최자가 소유하여 본설계는 당선작품이나 당선자에 한한 구애를 받지 아니한다. (상금은 1등 30만원, 가작 5만원,)

설계조건 5-1항 : 건축외형은 지상 5층 내지 6층, 지하 1층의 건물. 그 자체가 어떤 문화재의 외형을 모방한 것으로서 콤포지숀(60대임을 이해하자) 및 질감이 그대로 나타나게 할 것이여러 동의 조화된 문화재 건축을 모방해도 좋음. 단 내부방식은 한식을 가미한 초현대방식으로 한다.


......


당연히 건축계는 크게 반발해서 건축가협회의 이름으로 심사위원명단의 발표, 당선작가의 본설계 참여, 제작기일 연장과 상금 인상, 건축외형에 대한 제약철화, 출품작의 공개전시를 요구하며 이대로는 건축문화 발전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건의서를 보내였다. 


문화재관리국은 1주일후 답변을 하였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귀화의 건의는 채택되지 못함. 응모기간, 상금, 외형의 제약, 공개전시, 심사위원 명단은 변경할 수 없음. 본설계 참여 여부는 고려중


결국 그대로 현상설계가 실시되고 총 10점이 출품되었다. 신 국립중앙박물관에 200점이 넘는 응모작이 출품된것을 볼 때 건축계의 반응이 얼마나 냉담했는지를 알 수 있다. 거기에 더 웃긴건 그중 7점이 필수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바로 실격되어 단 3점을 가지고 심사하게 되어 그 중 1점이 당선 2점이 가작으로 선정되었다. 게다가 당선작을 공개하지 않다, 서울신문의 취재로 사건이 밝혀지게 되어 사건이 공론화되었다. 거기에 더해 전통양식의 건축을 현실적 문제로 콘크티르고 건설한다 하고, 당선자인 강봉진이 공사비의 1할(10%!!!) 을 설계비로 받는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논란이 가열되었다. 

박물관 당선작

당선작 조감도.










작가인 강봉진씨는 대놓고 우리나라 고건축의 대표적인 특색을 가진것들을 엄선하여 설계에 기용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법주사 팔상전, 금산사, 화엄사, 무량사, 등 10개의 건물을 선정하여 조화롭게 구성하였다고 한다.



논란이 계속되자 문화재청은 다시 입장 발표를 하였는데...

-건축가협회만이 반대의사표시를 하였으므로 반대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경복궁에 짓는것도 논할 ㅍ리요 없다.

-외형모방요구는 박물관의 소장품이 우리의 역사적 예술품과 문화재인 만큼 유행적인 경박한 현대건축물보다 민족의식을 강조하고 우리나라 고유의식을 갖는 중후한 고전건축으로 한다는 의도이다.

-시공비 1할설은 모략행위이다.

-현상금은 부족한 감이 있지만 예산절감을 위한 것으로 하등 문제 삼을 것이 없다.

-작품이 적지만 법적으로 1명만 응모해도 문제 없다.

-고건축은 목조건축이라고 속박되어야할 건축양식이라는 속단은 한국건축을 모르는 연구생과 조예가 없는자의 발언. 이미 콘크리트로 고전건축을 세운 예가 많이 있다.

-박물관 건축의 스케일이 기존 건축의 몇 배가 된다 하여 그 미를 상실하지는 않는다.

-연대가 다른 건축의 집합체여도 전체적 조화가 되면 무엇이 우스운가.


참으로 패기 넘치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건축단체 대표들이 모여서 강봉진씨를 설득하기도 하였지만 반대운동은 흐지부지 되었다. 문화재관리국은 일단 계획을 중지하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새로운 안을 작성하게 했다고 하는데 그 과정은 공개되어 있지 않다. 어찌되었든 시공식이 진행되고 (아직 본설계는 시작 안함) 투시도가 발표되었는데, 당선안과는 또 다른 것이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B

초기안 보다 많이 줄긴 했다.










결국 위의 투시도와 비슷하게 건물은 지어지게 된다.

공간지에서는 당시 전체 내용의 거의 40%에 달하는 36쪽에 달하는 특집을 내고, 심사위원인 정인국시의 자조적인 글까지 실으며 강도높게 비판한다. 또한 20명의 배평을 개재하는데, 그 제목만 보아도 '20세기 서울의 괴물 등장', '좌시할 수 없는 중대사', '넥타이 신사가 갓을 썻다.' '가치없는 4억짜리 도박', '공모요강부터 부당하다', '후세에 웃음거리 밖에 안돼' 이런식이며 당시 건축계 반응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원정수, 김상기, 유걸(아이아크의 유걸씨가 맞다면 당시나이 29)이 모여 '현대 건축에의 불신, 그리고 국립종합박물관 건립의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좌담을 하였는데 크게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렇게 국립종합박물관 현상설계에서 말도안되는 규정 탓에  그 동안 제기되어왔든 논란이 한번 크게 터져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게 되었는데, 앞으로 나오게 되는 다른 현상을 보게 된다면 이는 시작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기사 목록Edit

4

1967

2

국립종합박물관(특집)

7

1967

5

정부종합청사 설계경기 응모작품

15

1968

1

논단 정부청사 설계시비, 68년 미술계 전망

21

1968

7

국회의사당(특집)

22

1968

8

국회의사당 지명작가 김수근씨 사퇴

24

1968

10

국회의사당 신축기획설계안(특집)

27

1969

2

국회의사당 기본계획

71

1973

1

KBS 방송청사 현상 입선발표

1973

6

시민회관 현상설계 입상작품 발표

101

1975

10

국회의사당(특집)

102

1975

12

서울대학교 - 헛되이 무산된 설계자의 창작의도

105

1976

3

설계현상과 한국건축문화의 오늘 - 시급한 현상설계 풍토개선

139

1979

1

전문직으로서의 건축가란 무엇인가

141

1979

4

건축상을 주기 어려운 상황은 왜 생겨나는가

193

1983

7

아시아선수촌 및 공원기본계획 국제현상공모

196

1983

10

현상설계의 현황과 문제점

198

1983

12

제2회 대한민국건축대전 및 83년 건축가축제

199

1984

1

독립기념관 현상설계

199

1984

1

현상설계심사 소고

262

1989

6

국내 현상설계의 신기원을 기대한다

277

1990

9

건축대토론 - 현단계 한국건축계의 문제점

277

1990

9

눈뜨라 부르는 소리있어 - 건축 3단체를 중심으로

281

1991

1

천, 내일의 한국건축가

288

1991

9

건축사 자격시험, 왜 이렇게 어려워야 하는가

288

1991

9

건축계의 도덕성 상실의 문제와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

291

1991

12

건설경기 진정대책을 통해본 건축 행정의 미비와 이로 인한 피해자들

292

1992

1

목소리를 키우자(칼럼)

292

1992

1

정부 제3청사 현상설계

294

1992

3

한국건축의 단면 ( 정부 제3청사 현상설계 공모)

297

1992

6

건축가에게 창작의 기쁨이란 곧 권리이다

306

1993

4

60년대 건축가와 건축

328

1995

2

신 국립중앙박물관 국제 설계경기 공모

329

1995

3

신 국립중앙박물관 국제 설계경기 공모

338

1995

12

1995, 전환기의 한국건축

338

1995

12

신국립중앙박물관 국제설계경기 리뷰

338

1995

12

건축상, 침체 속 건축계의 신뢰 회복을 위한 보루

340

1996

2

고속철도, 한국의 21세기(경부고속도로 역사 현상섥)

386

2000

1

한국 건축가, 2000년대에 바란다

452

2005

7

서울 DMC IT 콤플렉스 조성사업 턴키

455

2005

10

우리 건축가들이 주도하는 도시경관 변화

455

2005

10

서울시청사 증개축에 던지는 세가지 이슈

457

2005

12

행정복합중심도시 도시개념 국제공모

459

2006

2

변화속의 2006 건축계 (감리영역)

460

2006

3

변화속의 2006 건축계 (건설사는 왜 디자인을 원하는가)

462

2006

5

서울시청사 증개축 턴키

465

2006

8

변화속의 2006 건축계  설계시장 개방 어디까지 왔나

467

2006

10

행정중심복합도시첫마을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478

2007

9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상버 국제지명현상설계

481

2007

12

칼럼 건축현상설계

482

2008

1

중심행정타운 행정도시의 현대를 마랗다

484

2008

3

서울 신청사, '디자인 서울'이 선택한 '서울의 상징'

486

2008

5

백남준 아트센터, 그 많던 아이디어는 어디로 갔을까?

487

2008

6

이화캠퍼스 콤플렉스가 남긴 것

490

2008

9

송도, 장밋빛 미래를 꿈꾸다

533

2012

4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

534

2012

5

CM쪽 대답

535

2012

6

건축작품의 저작권에 대해서

536

2012

7

백지화된 현상설계 이슈(신혜원,이민아,사이) 박을복 자수박물관

538

2012

9

서울시 새 청사를 돌아보다.

541

2012

12

사각지대에 놓인 건축저작권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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